“형은 시대정신 이끈 민중의 기관차”

기사입력 2015.07.12 오후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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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신이의 발자취] 민중미술가 문영태 화백



고 문영태 화백의 영정.

문영태 화백을 처음 본 것은 대학을 졸업한 1979년도이니 벌써 35년이나 됩니다. 그리고 이곳 경기 김포 문수산 자락에 화실을 만들어 한동네에서 얼굴을 맞대고 지낸 지도 20년이나 됩니다. 참으로 귀하고 긴 인연이었습니다.

영태 형, 그래요. 저는 늘 그렇게 불렀습니다. 언젠가 형은 강화대교 큰길에서 염하강 줄기를 따라 이곳 문수산로 길로 들어서면 너무도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특히 봄볕 그리운 강가에 길 따라 매화향기 가득할 때쯤이면 하늘 아래 이곳만한 길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즐거워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능소화 활짝 핀 이 좋은 계절에 아무 말씀 없이 훌쩍 떠나시다니요. 문 선배는 이 아름다운 문수산로 길을 도솔천 건너 피안의 언덕에 이르는 길로 벗 삼으셨나 봅니다.

젊은 시절 영태 형은 터벅머리에 무척이나 소탈한 모습이었지만 누구보다 진지하던 초롱초롱한 눈빛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렵고 진부한 대화는 늘 선문답 식으로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었지요. 무척 부지런한 고인은 미술인들은 물론이고 시인, 연극인, 사진가, 춤꾼 등 누구보다 문화예술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요. 그리고 80년대, 어둡고 그늘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각박한 시기에 형은 동료 화가들과 함께 시대정신전을 기획하고 우리 시대의 담론을 정리한 무크지 <시대정신>을 발간했습니다. 미술잡지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형은 부조리한 체제와 제도에 맞설 줄 아는 깨어 있는 미술인이었습니다. <시대정신> 창간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피어난 첨예한 의식들을 다시 대중 속으로 끌고 가는 기관차가 되고 싶습니다.”

80년 초 형의 작품 <심상석-상황>(心象石-狀況) 연작은 상처받은 인간의 자아를 통해 시대의식을 반영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대중 속으로 찾아가는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판화전’을 기획하고, 시민판화 시선집인 <사랑노래>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대중과 함께하는 미술을 하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며 시대정신 담론에 대한 실천이었습니다.

85년 민족미술인협회가 창립된 뒤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림마당 민 관장으로 어려웠던 고비를 잘 극복해주신 분이 바로 형이었습니다. 고인은 민미협 창립 당시 운영위원이었지만 속박받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성격 때문에 조직 안에서보다 밖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민미협 재정이 어려워지자 발 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고인은 늘 속 깊은 덕담으로 주변을 즐겁게 하고, 늘 술값을 먼저 내며 동료와 후배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신 분이었지요. 종이와 붓만 주면 춤추듯 초서를 즐겨 쓰고, 화훼를 좋아하여 조선 세조 때 화훼 전문서인 <양화소록>을 집필한 인재 강희안보다 뛰어난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화훼와 함께 고인은 도자기나 민화 등 서민적인 민예품에 탁월한 안목을 갖춘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제 작업실인 문수산판화공방 서재에는 올봄에 하동에서 제다한 햇차와 무이산의 구수한 무이암차들을 많이 갖다 놓았는데 이제 찻자리에 형을 모실 수 없다고 생각하니 통탄스럽기만 합니다. 이제 고인이 즐겨 마시던 찻잔에 찻물 가득 채워 두 손 모아 올리니 부디 하늘 길 먼 길 가시는 길에 목 축이며 편안히 가십시오.

홍선웅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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