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즘]『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와 『천상의 방랑자』를 읽고

[ 정이창 _ 문화비평가]


▲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는 초심자들에게 음악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세계를 친절하게 이어주는 데 주력하면서도 나름대로 저자의 독특한 시각을 각인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클래식 음악이 인기란다. 내 주위에선 아직 변화의 기운이 실감나지 않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TV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많은 이들이 클래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 컴필레이션 음반은 연이어 잭팟을 터뜨렸고, 드라마에 사용되었던 곡들을 모아 들려주는 대중적인 연주회가 잇달아 기획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연아 선수가 시합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던 클래식 음악을 모아놓은 음반도 시장에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박스세트 음반은 인기 있는 음악가의 경우 예약을 하고 몇 달을 기다려야 할 만큼 호응이 높다.

이런 행보에 비한다면 초보자들이 읽을 만한 대중적인 클래식 교양서는 아직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급한 기대는 금물. 최근에 출간된 책들을 보면서 음악 도서 시장도 독자층이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글에서 살펴볼 내용은 바로 최근에 출간된 국내 저자의 클래식 교양서 두 권이다.


음악과 미술의 행복한 만남

서울시향 월간지 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진회숙의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는 음악과 미술을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사실 음악과 미술의 조합은 그리 새로운 시도로 보기 어렵다. 비슷한 성격의 책들이 이미 과거에 몇 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책의 성패는 공통분모를 얼마나 신선하게 설정하고 그에 맞는 레퍼토리를 적절히 골라 소개하는가에 달려 있다.

음악과 미술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충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소재의 공통성. 이는 음악작품과 미술작품이 같은 소재를 다룬 경우를 말한다. 다음으로 분위기의 공통성이 있는데, 음악과 미술이 서로 비슷한 정서적 세계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매체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닮았을 수 있다. 이는 작품을 만들 때 예술가가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는 지향점이나 개념 등을 말한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의 1부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매체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룬 예술가들을 묶어서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전통적인 예술관이 무너지면서 예술가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나 개념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전까지의 예술이 예술작품이라는 ‘대상’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의도’도 감상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구 예술의 전통을 파괴하고 비문명 예찬으로 돌아선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 감정을 배제하고 무한반복의 세계에 빠져든 앤디 워홀과 필립 글래스, 작품에서 의도를 배제하고 의미를 온전히 감상자 몫으로 돌린 존 케이지와 잭슨 폴록이 하나의 범주로 묶인다.

냉정하게 말해 이런 서술에는 저자의 독창적인 시야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일단 시기가 20세기 모더니즘 이후로 한정될 테고(왜냐하면 예술가들이 매체에 대해 자의식을 갖게 된 것이 이 무렵이므로), 매체를 다루는 방식이 무한정 널려 있는 게 아니므로 대개 교과서식의 구성을 띄기 마련이다. 그에 비한다면 소재가 비슷하거나 작품 분위기가 비슷한 음악과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는 2부와 3부는 저자가 창조적으로 이야기를 엮어낼 여지가 많다.
음악과 미술의 공통점을 소재의 면에서 접근할 때 가장 만만한 것이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다. 서구 문명의 상상력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신화를 매개로 음악과 미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어렵지 않게 책 한 권 분량의 정보를 채울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명시적인 관계로 이어진 예술보다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슷한 세계를 갖게 된 배다른 형제들을 만나는 재미가 더 컸다.

저자는 야수파 화가 라울 뒤피의 그림에서 모차르트의 음악과 같은 경쾌한 리듬을 본다. 꿈과 환상의 묘사에 재능을 보였던 멘델스존과 샤갈 역시 비슷한 성향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한다. 재즈를 클래식 문화로 편입시킨 조지 거슈윈과 술집과 거리의 모습을 즐겨 그렸던 툴루즈 로트렉은 뒷골목 예술을 새로운 경지로 이끈 선구자들이고, 허무주의와 고독의 세계에 침잠한 슈베르트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도 같은 피가 흐르는 예술가들로 평가된다. 이렇듯 매체는 서로 달랐지만 비슷한 기질과 성향으로 감동을 주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기쁨이 이 책의 미덕이다.

서로 다른 예술 간에 다리를 놓는 작업은 예기치 못한 경로가 필연성을 획득할 때 존재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하는 교양서가 너무 지엽적이고 전문적인 지점에 빠진다면 보편성과 대표성의 가치를 놓칠 수 있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는 초심자들에게 음악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세계를 친절하게 이어주는 데 주력하면서도 나름대로 저자의 독특한 시각을 각인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슈베르트는 잊어라


감상적이고 수줍은 선율의 노래를 남긴 음악가라는 슈베르트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고, 그의 거칠고 때로는 파격적인 면모를 들추어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가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주선한다면, 김문경의 『천상의 방랑자』는 시와 음악의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책이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텍스트는 슈베르트의 가곡들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이 자랑하는 노랫말과 음악의 완벽한 호흡을 생각한다면 이는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주로 감상적이고 수줍은 선율의 노래를 남긴 음악가라는 슈베르트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고, 그의 거칠고 때로는 파격적인 면모를 들추어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는 무엇보다 그가 선곡한 곡들에서 잘 나타난다. 인간적인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미뇽의 노래>와 <하프 타는 노인의 노래>, 세상에 대한 반항과 절규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지른 <소멸>, 그리고 욕정과 살인이 난무하는 호러 발라드 <난쟁이>가 바로 그가 선택한 곡들이다.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에 수록된 유명한 노래 <보리수>의 해석도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고달픈 현재의 짐을 벗고 편안한 휴식을 청하는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이를 자살의 유혹을 담은 섬뜩한 노래로 해석한다. 그러고 보니 친숙했던 이 노래가 달리 들린다.

시는 눈으로 즐기는 예술이라기보다는 귀로 듣는 예술에 가깝다. 청각적인 울림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장이 시의 본질이다. 그런 면에서 시는 음악과 무척 닮았다. 이런 두 가지 닮은 예술을 슈베르트는 독특한 경지로 끌어올려 또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슈베르트로 인해 가곡은 그 자체가 독자적인 예술이 되었다.

『천상의 방랑자』는 이런 슈베르트 가곡의 세계를 청각적으로 분석한다. 가사를 번역문과 함께 실어 운율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것은 물론 독특한 연주 효과를 소개하는 배려는 그 대상이 가곡이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무엇보다 책에 소개된 노래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곡들이 아니므로 부록으로 딸린 시디는 그만큼 더 반갑다. 저자의 설명과 확신을 읽으며 직접 귀로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사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슈베르트의 음악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애청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의 말을 패러프레이즈하자면, <미완성 교향곡>, <죽음과 소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겨울 나그네>, <마왕>, <바위 위의 목동> 등을 들었으면 슈베르트는 어느 정도 마스터한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한마디로 슈베르트의 심화 학습을 이끄는 안내서인데, 그렇기에 음악사에 대한 기본 정보와 음악 용어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는 요구된다.

하지만 초심자를 위한 말랑말랑한 교양서 못지않게 중급 감상자를 위한 이런 책도 필요하다. 국내에 소개된 음악 도서들이 초급 교양서와 전공자들이 읽는 전공서, 이렇게 두 가지로 양분되는 상황에서 음악 애호가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을 위해 참신한 주장과 정보를 담은 이런 책들도 꾸준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