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긴급진단]<1>빈사의 화랑가




5∼14일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올해 첫 아트페어는 당초 예상 매출액(6억여원)에 못 미치는 4억여원으로 막을 내렸다.


‘미술시장 활성화’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던 이번 행사는 국내외 작가 95명의 작품 1000여점을 선보였지만 때 아닌 ‘3월 폭설’에 ‘탄핵 정국’까지 겹쳐 봄기운을 기대했던 주최측을 안타깝게 했다. 한 관계자는 “주말이 겹친 마지막 이틀엔 단골 컬렉터들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 밖이었다”고 말했다.


20여년간 미술품 운송업을 하고 있는 K씨는 “지난해 10월 이후 일감이 거의 없다”며 “이번엔 좀 나아질까 했는데 기미가 안 보인다”고 한숨지었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회복되지 못한 미술시장은 13년을 끌어 오던 미술품 양도세 부과법안이 지난해 말 폐기돼 “이젠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 대형 사건의 여파로 미술 팬들을 여전히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24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박수근의 그림이 최고가를 경신했으나 국내 미술계에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전시 큐레이터 경력을 살려 최악의 경우 1년에 1억원짜리 한 점만 팔아도 기본 운영경비는 빠지겠거니 하고 최근 덜컥 화랑을 열었지만 월세와 큐레이터 급여, 각종 관리비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회복되지 못한 미술시장은 미술품 양도세 부과법안이 지난해 말 폐기돼 “이젠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여전히 미술애호가들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화랑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인사동 거리.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청담동의 갤러리 동동, 갤러리 JJ, 갤러리 현, 종로구 사간동의 갤러리 시엘 등이 잇따라 폐업했으며 사간동의 한 화랑은 한 해 동안 주인이 세 번 바뀌기도 했다. 청담동에서 20여년 자리 잡아 온 유나화랑도 이달 말 문 닫을 예정이다.


대형 화랑의 한 관계자는 “중산층이 붕괴되는 시점에서 중간 컬렉터층이 사라지고 있다”며 “여윳돈이 생기면 사교육비나 부동산 재테크에 나설망정 그림은 안 산다. 기업들도 정치 상황에 위축돼 그림 구입을 꺼린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가군은 손꼽을 정도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 옥션에서 지난해 거래된 ‘작가 베스트 5’는 유영국, 박수근, 이우환, 김환기, 천경자였다. 유일한 생존 작가인 천 화백도 신작이 나오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현재 활동하는 40, 50대 중견작가들은 한 명도 끼지 못한 것이다. 미술 경제지를 표방하고 지난해 10월 창간한 ‘아트 프라이스’는 창간호에서 ‘국내 미술품 가격이 정점에 올랐던 1991, 92년 이후 작품가격이 오른 작가는 사실상 없다’고 전했다.


20여년간 컬렉션을 해 온 한 컬렉터는 “외환위기 이후 시장에 나온 미술품들이 거의 환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컬렉터들 사이에는 미술품이 재테크는커녕 오히려 짐만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면서 “떠난 컬렉터들은 돌아오지 않고 새로운 컬렉터는 생기지 않으니 시장의 불황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문화향수 실태조사’(2002년 7월 1일∼2003년 6월 30일)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예술행사 관람률은 62.4%로 2000년 54.8%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미술 전시는 2000년 11.6%에서 2003년 10.4%로 오히려 낮아져 미술 대중화의 길은 더욱 멀어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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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4.3.24 / 허문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