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대전 대관 중단에 대한 건의서

  1981년 관전시대의 국전이 30회로 막을 내리고 1982년 민전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그런데 그 서막의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졌다. 그것은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이 개최되자, 과천으로 옮긴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모전을 유치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엄연히 민간에 이양된 기구임에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접수 및 심사와 전시가 종전(국전시대)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계로 민전이 아니라 국전 그대로 존속의 의미를 유지한 것처럼 호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대전을 지금도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국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협의 미술대전 운영자들이 비리를 유린할 수 있었던 것도, 약력에 목말라 하는 수많은 미술인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이력의 권위로 삼았던 빌미 때문이다. 이러한 빌미는 결국 미협 이사장 선거에 금품공세의 크나큰 타락을 불러왔으며, 동시에 당선자는 그 본전 찾기를 미협 공모전을 비리온상의 과녁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원인 제공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의 비리의혹은 매년 국전시대보다 더 추악하고 조직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결국 번번이 수사기관의 조사결과는 도저히 미술대전의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역시 전국 메스메디아를 도배한 비리의 수법 공개로 미술인들의 얼굴에 또 다시 먹칠을 하였다.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같은 미술인으로써 자괴감과 더불어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금껏 미술대전을 치르고 나면 상(賞)을 둘러싸고 숱한 비리의혹이 제기되어 조용히 넘어가는 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와 같은 예전의 작은 기억은 차치하더라도 1993년의 대거 구속된 큰 사건을 비롯하여, 불과 5년 전 2001년 봄에도 미협 19대 곽석손 집행부에서 25명이 무더기로 입건과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눈앞의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20대 하철경 집행부는 그 사건을 교훈삼지 않았다. 오히려 본보기로 삼았던지 2006년 봄 미술대전에서 더욱 대담한 간 큰 질주를 감행하였다. 겨우 문인화 한 부문을 수사한 결과 100명이 넘는 입건과 9명이 구속되었다니 말문이 절로 막힌다.  
  심지어 심사위원을 사전에 정하여 모텔에 합숙을 하면서까지 작품사진을 주고받으며 치밀하게 부정을 준비했다는 기사를 읽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패의 폭발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사면초가를 자초한 신인작가 등용문이라는 허울 좋은 허위의식의 표출일 뿐인 것이다. 해서 이제는 미술대전의 사망선고와 아울러 장례절차만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지금도 미협 21대 노재순 집행부는 이미 죽어서 썩어 문드러진 그 공모전을 다시 회생시키느라 부산하다는 소식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운영을 위하여  건물 벽면을 꽉 채운 ‘한국미협정책연구소’라는 큰 간판을 종로경찰서 맞은편에 걸어놓고 26회 미술대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자행되었던 ‘대한민국미술대전’의 고질적인 병폐로 마침내 주검 앞에서 장례식은커녕 또 ‘비리대전’의 시작을 꽤하고 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런 지경에 놓여있는 ‘미술대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아직도 대관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일정부분 비리온상에 동조하고 있음을 뜻하는 결과이다. 세계 어느 나라 국립미술관이 공모전을 대관하고 있다는 말은 들은 적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며 책임자의 결단만이 정도에 값하는 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동안 공모전 대관에 따른 잘못된 점을 2001년 전 오광수 관장 재직 시에 일부 시정된 바 있다. 이는 미협의 조직적인 공모전 부정사건의 수사결과가 지상을 누빈 후에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것도 미술자정 NGO의 대관철회 요구에 부딪쳐 1실과 2실 기획전시실의 대관불가 방침을 마지못해 내어놓았다. 그러나 7실은 아직까지 문제의 그 공모전을 그대로 대관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대관면적이 좁아진 것에 지나지 않을 뿐,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을 이용한 비리운영은 앞에서 언급한 그대로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다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철을 공모전 공고와 접수 그리고 심사와 전시로 한해가 시작되고 저무는 것만 달라진 것이다. . 다시 말하면 조금 불편해 진 것뿐이지 비리를 온상하는 데는 아무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시상식을 겸한 오픈식 날만 장날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거대한 대한미국미술대전이라니 크나큰 돈벌이 사업이라도 된단 말인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국민예술협회 공모전을 유치해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이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조를 얻은 미협의 할일은 년 중행사로 공모전에 치중하는 일과 건축 장식물 심의에 따른 이권 챙기기 등에 혈안 할 뿐,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나 창작 지평에 대한 보호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결과 실력을 갖춘 기존의 의식 있는 미술인들은 모두 떠나거나 관심이 없고, 자격미달의 아마추어들 놀이마당으로 변질 된지 오래다.
  이를 만회하기위하여 미협 이사장이 바뀐 이번의 경우도 기존에 명성을 쌓아온 작가들의 이름을 빌어 416명이나 고문,자문으로 모시고 아마추어들을 그 놀이마당으로 유인하고 있다. 일찍이 세계의 어떤 괴물단체가 4백여 명이 훨씬 넘는 고문,자문단이 있던가? 미협의 개과천선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는 격이며, 창녀에게 정조를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비 개혁적이었던 오광수 전 관장도 5월 17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무척 부끄럽다. 미술대전은 아예 없어져야 한다.”며 “미술대전이 과거에는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창구였지만 이제는 각종전시, 비엔날레, 경매 등 등단경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데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들의 놀이마당을 계속 제공할 셈인지 묻고 싶다. 더욱이 전 근대적인 미협의 고루한 공모방법은 현대적사고와 부합되지 않을뿐더러 국립현대미술관이 지향하는 정신과도 다르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식민잔재의 낡은 틀을 버리지 않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오를 지금이라도 깨닫기 바란다. 이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임운영기관으로 출발하여 그 기대가 여간 크지 않다. 불과 10여년에 이르는 동안 관장이 무려 4사람이나 바뀌었지만 미술관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4년 전 김윤수 관장께서는 미술관 책임자로 입성하면서 공모전 대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바 있었다. 공모전 대관이 지금까지 지속되었다면 재임4년 동안의 김관장 개혁의지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미술자정NGO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든 공모전대관이 중단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더 제언하는 바이다. 정부가 바뀌고 국가정책이 바뀌고 관장도 개혁적인 분으로 임용되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개혁적이라고 기대했던 김관장 체재가 이렇게 느슨하다면 제도권 진입의 안주인지? 공직의 바른 도를 세우지 못한 부끄러움인지를 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이 해야 할 기능이 무엇이며, 운영자금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인식한다면 미술관장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미술대전“의 대관에 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주시길 바란다. 더 이상 미술대전으로 얼룩진 상처를 국립현대미술관이 떠않고 가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2007년 5월 31일
                  
     민주노총공공노조 전국미술인노동조합 조합원 일동